인혁당 사건이란? 지식채널 e 캡춰+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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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퍼왔습니다. 
지도자의 중요성을 느낍니다. 지도자라 할 수도 없지 않을까요.. 군사 정변이였으니까요.
이런 일들이 있음 에도 박정희 정권에 대한 후한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지식채널 e의 캡춰 화면과 영상이 입니다.

 

인혁당 사건인혁당 사건

 

[영상]
 


1974년 4월 8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3명이 구속되었다. 이 중 도예종·여정남·김용원·이수병·하재완·서도원·송상진·우홍선 등 8명은 사형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15명도 무기징역에서 징역 15년까지 중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선고를 받은 8명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지 불과 18시간 만인 1975년 4월 9일 전격적으로 형이 집행되었다.이는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건으로 해외에도 알려져, 제네바 국제법학자협회가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였다.

[출처] 인민혁명당사건 | 두산백과


 

2002년 9월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 인혁당 사건은 정부의 조작극이라 발표
2002년 12월 유가족 - 서울 중앙지법 재심 청구
2005년 12월 재심시작
2007년 1월 23일 - 사형이 집행된 전원 무죄 선고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당시 반국가 단체라고 발표된 인혁당은 서클 수준의 단체였으며 수사과정에서 각종 고문이 자행됐다는 점이 인정됐다. 그리고 2차 인혁당 사건의 중심이었던 ‘인혁당 재건위’는 실재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겨레 신문 기사 내용중 일부입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1248.html)

새 벽 4시30분 흰색 죄수복을 입은 첫번째 사형수가 들어왔다. 백열등이 환하게 켜진 방안으로 들어온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여기가 어디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주위를 둘러본 그가 물었다. 법무관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사형을 집행한다는 판결문을 읽고 유언을 물었다.

“난 억울해. 하지만 언젠간 모든 일이 밝혀질 거요.” 사형수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집행관은 사형수의 머리에 검은 복면을 씌웠다. 목에 밧줄도 감았다. 잠시 뒤 버튼을 누르자 사형수 발밑의 송판이 열렸다. 군의관이 다가가 숨진 것을 확인하고 주검을 치웠다. “한 사람당 30분씩 걸렸다”고 박 목사는 회고했다.

뒤이어 들어온 사형수들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기도를 요청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도 답하는 사형수는 없었다. 박 목사 역시 사형수들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저도 너무 긴장해서…. 마음속으로만 기도했지요.” 

어 느 사형수는 마지막 소원이라며 “아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법무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담배 한 개비 피우고 싶다”는 소원도 허락되지 않았다. “새장에 갇힌 새가 날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는다”, “언젠가 이 더러운 정권은 망한다.” 마지막 소원조차 들어주지 않는 이들에게 남긴 사형수들의 마지막 말을 박 목사는 기억한다.

그 가운데서도 박 목사는 이수병씨를 잊지 못한다. “나는 유신체제에 반대한 것밖에 없고, 민족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한 것밖에 없는데 왜 억울하게 죽어야 되느냐! 반드시 우리의 이번 억울한 희생은 정의가 밝힐 것이다!” 그렇게 외친 이씨가 교수대에 올라가는 모습을 박 목사는 뇌리에 새겼다.

8명의 사형집행이 끝난 아침 8시, 밖으로 나온 박 목사는 흰 봉투를 받았다. 특별근무수당으로 3만원이 들어 있었다. “죄책감이랄까…. 이런 일을 하고서 이런 걸 받아야 하는가 갈등을 느꼈죠.” 구치소 정문에서 유가족들이 거칠게 항의하고 있었다. 박 목사를 태운 지프차는 흐느끼는 유가족을 지나 구치소를 빠져나왔다. “그 뒤로 저는 사형제 반대론자가 됐지요.” 박 목사가 말했다.

나의 헛소리.. 

저분들이 사형을 당하지 않고 살아 있었더라면, 더 일찍 밝혀 지고, 억울하게 죽지 않고 보상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요즘 사형에 관한 이야기는 뜨겁다. 강력 범죄를 막기 위해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 중 인혁당 사건으로 억울하게 사형을 당한 이야기가 널리 퍼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10년 전 대학교를 입학해서 전공은 아니었지만, 철학에 관한 조금의 공부를 했을 때였다.  "사형 제도는 필요한가?"  의 주제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그 결과 사형 제도는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였고, 그 이유인즉, 국민의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다(그 당시 내 생각에는 말이다). 사형제도가 있다고 해서 범죄율의 급감이나 영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혁당 사건 같은 억울한 사람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형을 하지도 않는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국민이 사형제도가 없으면 범죄율이 증가한다고 믿기 때문에 있다(사형제도가 없어 짐으로써 최고의 벌은 없다고 생각 범죄를 행할 것). 란 이야기...

이제 10년이 지났다. 인제야 사람들은 사형 제도의 알고리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 난 아직도 반대 다. 사형은 너무 짧은 고통이지 않은가? 살려 두고 괴롭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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